2026년 9월 28일 서울, 이스트포인트 2026
김서준두 분과 함께 앉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가운데 계신 정병기 대표님과 모드하우스를 만들게 된 계기가 여기 이성수 대표님과의 식사 자리였거든요. 블록체인 거버넌스로 팬들이 참여하는 아이돌 그룹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얘기가 나왔고, 이성수 대표님이 정병기 대표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트리플에스(tripleS)와 아르테미스(ARTMS), 아이덴티티(idntt)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병기안녕하세요. 모드하우스 대표 정병기입니다.
이성수안녕하세요. SM엔터테인먼트 A&R 총괄 이성수입니다.
김서준정병기 대표님께 먼저 여쭙겠습니다. K-POP은 원래 음악 산업이었지만, 이제는 공연을 비롯한 다른 영역에서도 매출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K-POP을 여전히 음악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IP나 팬덤 산업으로 봐야 할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경쟁자는 누구일까요?
정병기저는 10년 전부터 K-POP을 캐릭터 산업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음악이 바탕인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K-POP이 세계에서 이만큼 팬덤을 모은 원동력은 음악을 넘어 캐릭터로 접근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성수 대표님은 저와 20년 넘게 친구이자 동료이자 라이벌로 지낸 사이인데요, 이 대표님이 만든 엑소가 음악만으로 팬덤을 모은 팀이냐 하면 결코 아니죠. 엑소에는 초능력이라는 설정이 있었습니다. 그건 음악이 아니라 캐릭터를 위한 장치였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만든 이달의 소녀라는 팀이 세계적인 현상을 일으켰을 때도, 그 힘은 캐릭터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K-POP의 경쟁자가 다른 K-POP 회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의 경쟁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나 〈주술회전〉 같은 작품입니다.
김서준이성수 대표님은 어떻게 보세요? 원래 K-POP은 한국 사람이 한국 노래를 부르는 음악이었는데, 이제는 한국인 멤버가 한 명도 없는 K-POP 그룹까지 나옵니다. K-POP은 무엇이 되어 가고 있을까요?
이성수K-POP 안에는 여러 음악 장르가 섞여 있어서 하나의 음악 장르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저는 K-POP을 콘텐츠 장르라고 봅니다. 음악, 퍼포먼스, 뮤직비디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팬덤이 어우러진 것이니까요. 라틴이나 EDM이 아니라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나란히 놓아야 합니다. K-POP의 제작 시스템이 K-POP을 만든 건 맞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라면 매뉴얼로 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문화는 그렇게 복제되지 않거든요.
김서준정병기 대표님, 모드하우스의 정체성과 맞닿은 질문입니다. 팬은 원래 회사가 만든 것을 받기만 하는 존재였는데, 모드하우스는 아예 거버넌스까지 팬들에게 열었습니다. 팬과의 관계는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정병기지금까지는 팬이 돈을 얼마나 쓰게 하느냐가 중요한 시대였습니다. 이제 큰 플랫폼들이 원하는 건 돈보다 시간과 어텐션입니다. 저희도 돈을 더 쓰게 하는 걸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팬이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얼마나 큰 로열티를 갖게 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김서준 대표님을 만나 모드하우스를 만들 때 제 생각도 같았습니다. 팬이 가장 깊이 참여하는 회사를 만들어 보자. SM처럼 기존 문법 안에서 만들어진 회사는 그 길로 가기 어려우니, 우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가 보자고요. 그래서 팬들이 투표로 그룹의 활동과 방향을 정합니다.
김서준해 보니 어떠셨어요?
정병기참여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너무 많이 관여하다 보니 피로하다는 팬들도 있었어요. 4, 5년 동안 쌓은 경험으로 피로는 줄이고 참여는 높이는 방법을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김서준이성수 대표님, SM은 멀티 레이블 체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이 앞으로 필수가 될까요?
이성수유니버설, 소니, 워너 같은 글로벌 음악 기업은 레이블을 만들거나 인수하면서 성장했고, 그 중심에는 늘 유통이 있었습니다. CD를 수출하고 라이선스로 생산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IT와 AI, 블록체인이 그 구조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제는 CD를 보내지 않아도 모든 걸 온라인으로 전달하고, 마케팅도 완전히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가 멀티 레이블을 하는 이유는 확장보다 균형입니다. 지금 하는 음악만 계속하면 점점 한 장르에 갇히니까요. 산업으로 커지려면 여러 장르를 이해하고, 장르마다 다른 접근법도 익혀야 합니다.
김서준신생 기획사가 대형사와 경쟁하기 점점 어려워진다고들 합니다. 이들에게는 어떤 기회가 있을까요?
이성수모드하우스도 SM에 비하면 신생 회사죠. 그런데 오히려 지금이 기회입니다. 판이 바뀌고 있으니까요. SM 같은 회사는 쌓아 온 관성과 시스템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신생 회사는 처음부터 새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지금 SM은 모드하우스의 코스모 같은 걸 만들 수 없습니다. 대신 그런 회사들과 협업하면서 서서히 움직이고, 그들의 기반이 되어 주는 역할을 하겠죠. 앞으로는 큰 회사보다 이 시대에 맞춰 빠르게 설계된 회사에 더 큰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김서준오늘 이스트포인트에서 AI 얘기가 정말 많이 나왔습니다. 정병기 대표님, AI는 K-POP을 어디까지 바꿀까요? 아티스트가 사람으로서 지녀 온 것은 어디까지 남을까요?
정병기여기 계신 분들 모두 AI를 쓰고, AI의 미래를 기대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AI에 가장 보수적인 시장이 아마 K-POP일 겁니다. 아티스트의 작품에 AI가 들어와 본질을 해친다는 데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팬덤 전반에 있습니다. 저는 그 반응에 반론을 펴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지금의 현실이고, 팬들의 공감대가 생긴 뒤에 AI를 써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서준이성수 대표님께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도 K-POP 위기론을 10년째 듣고 있는데, 그동안 K-POP은 계속 성장했습니다. 진짜 위기는 무엇이고, 새로운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성수제가 처음 일할 때는 K-POP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2011, 12년쯤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저게 한국에서 온 거야?" 하던 때 생긴 말이죠. 그 뒤로 14, 15년째 위기가 언제 오냐는 질문을 받지만, K-POP에는 위기보다 기회가 계속 찾아왔습니다. 좋은 음악이 계속 나오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가 되는 무대를 끊임없이 만드니 똑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작곡가들도 좋은 곡을 이쪽으로 줍니다.
김서준그럼 진짜 위기는 언제 올까요?
이성수K-POP의 뾰족함이 사라질 때입니다. 현지화는 좋지만, 그러다 우리의 소리와 맥락을 잃고 팝과 구분되지 않으면 결국 먹힙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라는 본질과 그 음악을 소비하는 팬덤입니다. 그 점에서 모드하우스가 많은 실험을 해 주고 있습니다. 팬에게 거버넌스를 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 프로듀서와 회사가 끌고 가던 일에 팬이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그 구조에서도 산업이 계속 발전할 수 있을까. 저는 여기서 좋은 해답이 나올 거라고 봅니다.
김서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