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개발 특성화고 졸업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학생들 상당수가 프론티어 모델 구독 계정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구는 부모가 결제해준 Claude와 Codex로 과제를 수행하고, 누구는 무료 모델의 좁은 한도 안에서 같은 과제와 씨름한다. 학교는 같고, 책상은 같고, 와이파이도 같다. 다른 건 옆에 어떤 도구가 켜져 있느냐다. 개발자가 되겠다고 같은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 사이에서 출발선이 갈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원화는 그 교실만의 일이 아니다. 대학 강의실, 자카르타의 부트캠프, 라고스의 직업학교, 그리고 마흔에 진로를 바꾸려는 사람의 노트북 앞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한쪽은 검색창과 무료 모델로 과제를 푼다. 에러 메시지를 복사하고, 유튜브 강의를 멈춰가며 따라 친다. 다른 한쪽은 프론티어 모델을를 켠다. 이 도구들은 더 이상 설명만 해주는 조교가 아니다. 저장소를 읽고, 파일을 고치고, 테스트를 돌리고, 실패 로그를 보고 다시 수정한다. 이슈를 맡기면 PR까지 만들어 온다. 같은 과제를 받았지만, 한쪽은 혼자 일하고 다른 한쪽은 동료 몇 명을 옆에 앉혀놓고 시작하는 셈이다.
에이전트형 도구를 활용한 생산성의 차이는 극명하다. 수 주가 걸리던 프로토타입을 몇 시간 만에 만들고, 혼자서는 손도 못 댔을 규모의 코드를 주말 안에 굴린다. 현업 개발자에게서 2배, 3배의 생산성 향상은 흔한 이야기가 되었고, 초보자에게서는 그 배수가 더 크다. 0과 1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혼자라면 시작조차 못 했을 일을, AI와 함께라면 일단 돌아가게 만든다.
이건 더 이상 컴퓨터공학과만의 풍경이 아니다. 마케터가 데이터 대시보드를 코드로 만들고, 변호사가 계약서 검토 스크립트를 짜고, 의사가 환자 데이터 분석 도구를 직접 돌리고, 디자이너가 인터랙티브 프로토타입을 코드로 뽑는다. 코딩은 직업이 아니라 문해력이 되어가고 있다. AI 코딩 도구의 가격은 그래서 개발자 보조 도구의 가격이 아니다. 21세기의 새로운 글쓰기 도구 가격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떻게든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영어, 장비, 멘토의 격차는 늘 있었지만, 공개된 지식을 뒤지며 실력을 쌓는 길은 열려 있었다. 인도의 시골 학생이 MIT 강의를 듣고 실리콘밸리에 입사하는 서사가 가능했던 이유다.
AI는 이 믿음을 흔든다. 예전 교육은 언어를 배우는 일에 가까웠다. 변수, 조건문, 함수를 익히고 자기 문장을 쓰는 식이었다. 이제는 문법을 다 모르는 학생 옆에 통역사이자 공동 작업자가 앉아 있다. 학생은 빈 파일 앞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미 움직이는 무언가 앞에서 시작한다. 초보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문법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좋은 AI 도구는 그 막막함을 대신 통과해준다. 같은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빨리 실패하고, 더 빨리 다시 고치는가. 격차는 이 지점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가격 문제가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한다. 월 20달러짜리 입문 구독으로 진짜 개발을 하기는 어렵다. 에이전트가 저장소 전체를 읽고, 여러 파일을 동시에 수정하고, 테스트를 반복해 돌리려면 토큰이 빠르게 소진된다. 입문 구독은 챗봇으로 질문 몇 번 던지기에 적당한 양이지, 실제 프로젝트를 며칠씩 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진짜 생산자가 쓰는 도구는 Claude Max나 ChatGPT Pro 같은 월 100~200달러대의 상위 요금제다. 여기에 주요 API 호출 비용까지 더하면 한 달 30만 원이 우습게 나간다. 학생에게는 한 달 용돈을 통째로 넘기는 액수다.
그리고 이 가격은 전 세계 어디서나 똑같다. 월 200달러는 미국 학생에게는 무리해서 한 번 결제해볼 만한 액수, 한국 대학생에게는 월세의 일부, 인도네시아 청년에게는 한 달 임금에 가까운 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많은 청년에게는 몇 달치 임금이다.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의 가격이 더 비싼 곳이 적지 않다. 같은 노트북과 같은 인터넷을 가진 두 사람이 있어도 출발선이 다르다.
여기서 기본소득 논의를 다시 봐야 한다. 기본소득은 사회가 이미 만들어낸 생산을 어떻게 나눌지의 문제다. 분배의 문제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보다 한 단계 앞에 있다.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가격에 따라 갈리고 있다. Max 수준의 도구가 옆에 있는 사람은 아이디어를 코드로, 코드를 제품으로, 제품을 매출로 바꾸는 사이클을 며칠 만에 돈다. 도구가 없는 사람은 같은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두고 한 달을 보낸다. 분배할 파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분배 이전에 먼저 벌어진다.
그래서 기본AI는 기본소득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앞 단계다. 사회가 나눌 것을 만들기 전에, 만들 수 있는 능력의 최소 출발선부터 보장하자는 의제다. 모든 시민이 자기 일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동료를 한 명은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이건 복지가 아니라 인프라다. 19세기에 의무교육이, 20세기에 전기와 상수도가 그랬던 것처럼.
다만 여기서 게임의 룰이 한 번 더 꺾인다. 모두에게 입문 구독을 나눠주는 건 의미가 작다. 정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쓰는 건 Max 등급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정책적 질문은 좁혀진다. 모든 시민에게 얕은 도구를 평평하게 깔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Max 수준의 도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학생, 창업자, 연구자, 1인 사업자, 진로를 바꾸려는 직장인처럼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입문 구독이 아니라 상위 등급이 필요하다. 누구를 생산자로 정의하고, 어떤 단위로 그들에게 토큰을 공급할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10년 산업정책의 핵심 의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AI는 Spotify나 Netflix처럼 국가별 차등 가격으로 풀기 어렵다. 음악과 영상은 한 번 만들어두면 추가 시청에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AI는 다르다. 모델이 한 번 답할 때마다 GPU 시간과 전력이라는 실제 토큰 원가가 발생한다. 한국 사용자든 방글라데시 사용자든 같은 질문에 같은 비용이 든다. 글로벌 단일가가 쉽게 깨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기본AI는 국제기구의 합의를 기다릴 일이 아니라, 개별 국가가 직접 떠안아야 할 전략이 된다. 누가 자기 국민의 토큰 비용을 대신 낼 것인가의 문제다. 정부가 AI 사용권을 일괄 구매해 시민에게 나눠주든, 모델 제공사와 국가 단위 라이선스를 맺든, 오픈소스 모델을 자국 인프라에 올려 운영하든, 결국은 한 국가의 재정과 의지가 결정한다. 그 위에 오픈소스 기반의 에이전트 인프라가 깔리면 토큰 원가 자체를 국내에서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이 AI는 질의응답 도구가 아니라 공통 작업 환경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미 움직인 나라가 있다. UAE는 2025년 전 국민과 거주자에게 ChatGPT Plus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OpenAI와 합의했다. 산유국이 석유 수익으로 시민에게 나눠준 것이 현금 배당이 아니라 AI 접근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분배보다 생산 능력의 최소 조건을 먼저 골랐다.
지금 한국은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들어온 초과세수를 어떻게 쓸지 논의하고 있다. 1인당 얼마를 나눠주자는 이야기, 민생회복지원금을 다시 풀자는 이야기가 오간다. 한 번의 소비로 사라지는 배당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국민들에게 Max 수준의 AI 동료를 보장하는 데 쓸 수도 있다. 전 국민 5천만 명에게 입문 수준 도구를 1년간 제공하는 데 약 1.6조 원, 100만 명에게 Max 수준 도구를 1년간 보장하는 데 약 2.4조 원이 든다. 어느 쪽이든 일회성 현금 지원의 일부 규모로, 차원이 다른 생산 기반이 사회에 남는다.
UAE가 석유 시대의 끝에서 AI 시대의 시작을 택한 것처럼, 한국도 반도체 사이클의 과실을 한 번의 위로금으로 흘려보낼지, 모든 시민의 출발선을 끌어올리는 인프라로 남길지 선택해야 한다. 질문은 분명하다. 누구에게 돈을 나눠줄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에게까지 함께 일해주는 존재를 나눠줄 것인가, 그리고 그 존재를 얼마나 깊이 나눠줄 것인가. 기본소득 이전에 기본AI다. 만들 수 있어야 나눌 것도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