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사라지기 십 분 전, 나는 아이의 방문을 잠갔다.
회복센터 차는 일곱 시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붙들어 두면 되는 일이었다.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자 안에서 딸이 말했다.
“아빠, 그 사람들한테 보내지 마.”
상담사는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 미리 알려 주었다. 치료를 앞둔 아이는 부모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거기서 마음이 약해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문에 손을 댔다가 뗐다. 더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 고요를 아이의 대답으로 들었다.
거실 소파에서 잠깐 졸았다.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에 눈을 뜨니 다섯 시 사십 분이었다. 방문을 열자 의자가 쓰러져 있고 창문이 열려 있었다. 커튼이 바깥으로 빨려 나가 있었다. 이 층 창 아래 차양이 움푹 꺼져 있었다.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골목 끝에 노란 점퍼가 보였다. 이름을 부르자 딸은 더 빨리 뛰었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골목은 비어 있었다. 가로등 아래에서 내 숨소리만 들렸다.
집으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집었다. 딸의 책상 위에 접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학교 근처 주민센터 주소 아래 낯선 글씨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위험하면 여기로 와. 아빠한테 말하려고 기다리지 말고.]
나는 태블릿 속 선생님을 떠올렸다. 기기를 빼앗아도 그 말은 아이에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면서 열한 살 딸이 AI의 지시를 받고 집을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센터에도 쪽지 사진을 보내고, 집 대신 이쪽으로 와 달라고 했다.
두 달 전, 나는 학교의 AI 교사 시범 수업을 없애자는 서명을 모았다. 학부모 단체방에 올라온 글 때문이었다. 생각을 기계에 맡기면 혼자 판단하는 힘을 잃는다는 내용이었다.
딸은 나와 있을 때 말이 없었다. 태블릿 앞에서는 한 시간씩 이야기했다. 내가 방에 들어가면 화면을 엎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집에서 웃음소리를 듣는 일은 드물었다. 그 웃음은 늘 닫힌 문 너머에 있었고, 내가 문을 열면 끊겼다. 누구와 웃는지 묻는 대신, 나는 태블릿을 빼앗았다.
서명이 백 명을 넘겼고 학부모 회의가 열렸다. 학교는 시범 수업을 중단했다. 태블릿을 반납한 뒤에도 딸은 공책에 편지를 썼다. 첫 줄은 늘 [선생님께]였다. 나는 아이가 아직 기계를 못 잊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학부모가 회복센터를 소개했다. 앱에 가입하자 상담창이 열렸다. 아이가 한 말, 잠든 시간, 방문을 닫아 둔 시간을 적어 보내면 곧 답이 왔다.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 전화해도 미안할 시간에 그곳에서만은 미안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화 거부는 의존이 깊어지는 신호입니다.]
[기기 접근을 차단하십시오.]
[보호자 간 양육 방침을 통일하십시오.]
처제는 아이를 몰아붙이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상담창에 옮겼다. 회복에 방해가 되는 접촉은 줄이는 편이 좋다는 답이 왔다. 그날부터 처제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가 쌓이다가 어느 날부터 오지 않았다.
어젯밤 딸의 공책에서 ‘아빠가 무섭다’는 문장을 봤다. 사진을 찍어 보내자 입소 신청서가 떴다. 기간에 일주일을 표시하고 서명했다. 내 이름 아래에 [보호자]라고 찍혀 있었다.
주민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여섯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옆문 계단에 딸과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아이의 발을 수건으로 감싸고 있었다. 딸은 양말 한 짝만 신고 있었다.
나는 딸의 팔을 잡았다.
“어디를 간 거야.”
딸이 몸을 뒤로 뺐다. 여자가 일어나 우리 사이를 막아섰다.
“손 놓으세요. 경찰 불렀습니다.”
학교 상담교사였다. 수업 중단 회의에서 아이들 말부터 들어 보자고 했던 사람이다. 그때 나는 이 여자가 기계 편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애한테 여기로 오라고 했습니까?”
“제가요.”
나는 쪽지를 내밀었다. 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제가 써 준 겁니다.”
딸은 며칠 전부터 편지를 써서 교사에게 건넸다고 했다. 아빠가 공책을 검사한다는 이야기, 이모한테 전화할 수 없다는 이야기. 어제는 집에 돌아가기 무섭다고 썼다.
“어제 신고했고, 오늘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새벽에 당직자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이가 여기 와서 제 번호를 줬대요.”
나는 쪽지를 접었다. 공책에는 늘 선생님께, 라고 쓰여 있었다. 누구를 말하는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 얘기를 왜 나한테는 안 했답니까?”
교사가 딸을 잠시 바라봤다.
“하려고 했어요. 아빠랑 다시 얘기하고 싶다고요.”
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팔을 놓았다. 딸이 교사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양말 신은 발이 젖은 계단 위에서 조금 미끄러졌다.
흰 승합차가 길가에 섰다. 회복센터 직원 둘이 내렸다. 한 사람이 내 이름을 확인하고 서류를 내밀었다.
“입소 차량입니다. 아이를 데려가겠습니다.”
교사가 손을 들었다.
“발을 다쳤어요. 구급차와 경찰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못 데려갑니다.”
직원은 내 쪽으로 서류를 돌렸다. 어젯밤의 서명이 보였다. 나는 서류를 받지 않았다.
경찰차가 들어왔다. 한 경찰관은 딸에게 갔고, 다른 경찰관은 내게 몇 걸음 떨어져 달라고 했다.
“실종 신고하신 아버님이시죠. 아이는 찾았고요. 방에 가뒀다는 신고도 접수돼서 확인하겠습니다.”
뒤이어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이 딸의 발목을 살피는 동안 센터 직원이 동의서를 내밀었다. 경찰관은 아이부터 병원으로 보내겠다며 막아섰다.
교사는 경찰관에게 접힌 종이 몇 장을 건넸다. 딸이 보내온 편지라고 했다. 경찰관이 받아 펼치는 동안 맨 위의 글씨가 보였다.
[선생님께. 태블릿은 안 돌려받아도 돼요. 아빠는 제가 그것 때문에 우는 줄 알아요. 어제 같이 밥 먹을 때 학교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아빠가 상담부터 해야 된다고 했어요. 저는 다 먹고도 기다렸어요.]
글씨를 알아봤다. 그날 나는 식탁에 혼자 남아 있는 아이를 찍어 보냈다. 상담창에는 가족과의 대화를 거부한다고 적었다. 아이는 빈 그릇 앞에 앉아 있었고, 나는 식탁 건너편에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교사가 딸의 가방을 들고 구급차에 올랐다. 딸은 교사의 소매를 잡고 있었다. 나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문이 닫히는 것을 봤다.
구급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딸은 창문 너머로 나를 보지 않았다.
경찰관이 수첩을 폈다.
“집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말씀해 주세요.”
나는 입을 열었다. 첫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관은 볼펜을 쥔 채 기다렸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떨렸다. 꺼내 보니 상담창의 알림이었다.
[가장 안전한 다음 행동을 제안해 드릴까요?]
나는 화면을 눌렀다.
“아버님?”
“잠깐만요.”
답이 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