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Nitro Seoul이 마무리되었다. 데모데이(우리는 게임데이라고 부른다) 무대도 비었고 박수도 가라앉았다. 그날 밤은 며칠이 지나도 모두의 머릿속에서 굴러다닐 것이다.
먼저 이름 얘기부터. Vibe Labs를 Nitro로 바꿨다. F1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코너를 빠져나오는 머신 뒤로 짧게 화염이 보이는 그 순간, 이미 빠른 차를 한 번 더 밀어주는 가속의 폭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거기에 가까웠다. 다만 가속이 늘 옳은 답일 리 없다. 어떤 질문은 멈춰야 보인다. 우리가 빌려오고 싶었던 건 단순한 빠르기가 아니라, 이미 잘 굴러가는 것을 한 번 더 밀어주는 짧은 순간의 정확함이다.
이름을 바꾼 또 다른 이유는 단어 자체에 있다. 아무래도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은 곧 사라질 것 같다. 자연어로 모두가 코딩하는 세상에서 그 행위에 따로 이름을 붙일 이유는 없다.
코딩이 자연어가 된 세상에서 창업자는 무엇을 하는가. 한 명의 파운더 옆에 열, 백, 천 명의 에이전트가 붙는 풍경이 곧 평범해질 것이다. 우리가 깔고 싶은 건 그 모호한 미래의 트랙이다. 그래서 Nitro다.
지난 8주를 돌아본다. 그저 옆에 같이 앉아 있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솔직하다. Fellow들이 매주 들고 오는 문제는 답이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누구도 등불을 들고 있지 않았고, 같이 더듬어 갔다. 다만 같은 방에 여러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등불을 대신했다.
두 번의 제주도 오프사이트가 또렷하게 남는다. 며칠을 같은 숙소에 머물며 밤을 새워 토론했고, 각자가 쌓아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즉흥 세션으로 풀어놓았다. 어떤 밤은 누군가의 노트북 앞에 둘러앉아 함께 코드를 짰다. 도시에서는 형식이 사람의 거리를 결정하는데, 제주에서는 그것이 잠깐 무너졌다. 무너진 자리에서 자라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다.
펠로우 구성도 한몫했다. 개발, 그로스, 데이터, 디자인. 각 분야에서 자기 영역을 오래 깊게 파온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셨다. 한 분야의 베테랑이 며칠을 붙잡고 있던 문제가, 옆자리의 다른 분야 베테랑에게는 한 줄짜리 답일 때가 자주 있었다. 그게 8주의 가장 큰 압축률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8주 동안 그나마 잘한 일은, 신뢰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모은 것이 전부였다. 좋은 사람들을 한 방에 모으면 알아서 함께 나누며 성장한다. 투자사가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비싼 자산은 콘텐츠도 자본도 시그널도 아니라, 같은 방에 모인 사람들의 명단이라는 걸 8주가 조용히 알려주었다.
데모데이 당일, 모든 팀의 발표가 좋았다. 4팀 모두 그날 평소보다 한 뼘 더 또렷해 보였다. 그 한 뼘이 8주의 결과물인지, 원래 갖고 있던 것이 무대 위에서 드러난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발표를 지켜보며 몇 개의 단어가 기억에 남았다.
환불 0건. 박수가 나올 만한 수치다. 다만 0은 도착이 아니라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환불이 한 건이라도 나와야, 그 한 명의 불만에서 회사가 무언가를 배운다.
광고비 0원도 비슷한 결이다. 광고를 켜본 적 없는 회사는 광고를 꺼본 적도 없다. 켜고 끄는 경험이 쌓이지 않은 채로 규모만 커지면, 어느 날 채널이 식었을 때 회사 전체가 함께 식는다.
대표 혼자 자동 운영. 완벽한 문장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판단의 부채가 쌓인다. 에이전트가 대체하는 건 일하는 사람이지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의 판단 품질이 회사 전체의 품질이 된다. 자랑이면서 동시에 가장 무거운 책임이다.
세 가지 모두 자랑할 만한 숫자였다. 동시에 셋 다 아직 만나지 못한 마찰을 가리키는 신호이기도 했다. 좋은 지표는 종종 두 가지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4팀의 공통점이 발표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서야 또렷해졌다. 한두 명의 파운더가, 과거였다면 열, 스무 명이 만들어냈을 퍼포먼스를 만들어냈다. 7개월 만에 100개 고객, 일본에서 100배 성장, 수억 단위 월매출. 시리즈 A 트랙션이다. 조직도를 펼쳐보면 사람은 한둘이고, 나머지 자리에 에이전트가 앉아 있다.
개발팀이 있다. 동료가 아니라 에이전트다. 마케팅도, 디자인도, 운영도, CS도, 데이터도 모두 있다. 전부 에이전트다. 직책을 채우는 존재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회사의 천체 모형이 바뀌고 있다. 지난 시대의 회사가 비슷한 무게의 별 여럿이 같은 중심을 도는 구조였다면, 다음 시대의 회사는 한 명의 사람이 자기의 판단을 중심에 두고 그 둘레로 수십 개의 실행 능력이 위성처럼 도는 풍경에 가깝다. 좋고 나쁨을 따지기 전에 풍경 자체가 변한다.
4팀이 그 풍경의 첫 페이지를 자기들의 숫자로 써냈다.
Nitro는 액셀러레이터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 형식을 빌려 시작했지만, 1기를 통과하면서 또렷해진 건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게 그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창업자도 투자사도 같이 흔들리는 시기다. 모델이 분기마다 다른 회사가 되고, 어제의 해자가 내일 사라지고, 펀드 사이클로는 변화의 곡률을 따라잡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모든 프론트엔드는 오픈소스가 되어간다. 약간의 스킬을 가지고 오퍼스 4.7로 돌리면 왠만한 서비스는 10분이면 베낄 수 있다. 만드는 것 자체는 더이상 해자가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경쟁하고 성장해야하는가. 정해진 플레이북이 창업자에게도, 사실 투자사 쪽에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은, 형식 하나를 잡아 반복하는 게 아니라 형식을 끊임없이 갈아끼우는 일이다. Nitro는 정해진 커리큘럼이 아니라 연속된 실험이고 싶다. 매번 다른 길이, 다른 구성, 다른 모집 단위, 다른 결과물.
그 변화 속에서도 끝까지 남기고 싶은 세 가지가 있다. 함께 빌딩하는 투자사라는 자리. 글로벌 무대의 이해당사자를 신뢰로 빠르게 연결하는 그물. 그리고 최고 수준의 에이전틱 빌더 커뮤니티. 우리는 GP 이전에 빌더이고, 서울과 도쿄에서 아부다비까지 짜온 신뢰의 그물은 형식이 바뀌어도 남는다. 같은 시대의 같은 질문을 손으로 만지는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비대체적인 자산이다. 1기가 그 자산의 가치를 가장 분명하게 알려준 8주였다.
형식은 흔들려도 본질은 남는다. Anthropic이 1개월 이상의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의외였고, 다시 생각하니 당연했다. 모델이 분기마다 다른 회사가 되는 환경에서 연간 계획이라는 형식은 이미 한물간 도구일 수 있다. 8주를 통과한 우리가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 배움이 2기의 형식 자체를 흔들어야 한다. 연초에 세운 계획대로 또 한 번의 배치를 굴린다면, 1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일 것이다. 배운 것이 행동을 바꾸지 못하면 그건 배움이 아니라 관성이다.
8주 동안 같이 해준 모든 창업팀과 Fellow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적어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