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붙 GLM 시리즈를 만드는 중국 최대 AI 기업 지푸(Zhipu)의 API를 원활히 쓰려면, 아침 10시에 접속해야 한다. 가격을 83%나 올렸는데도 공급이 딸린다. 중국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마오타이만큼 잡기 어렵다”는 농담이 돈다.
1년 전의 풍경은 정반대였다. 바이트댄스의 Doubao는 AI가 글 한 단락을 처리하는 비용이 0.01원도 안 됐고, 알리바바는 수십만 원어치를 무료로 뿌렸다. DeepSeek은 자사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공개하는 ‘오픈소스’ 철학의 아이콘이었다. 당시 중국 AI 업계를 지배하던 분위기는 한 단어 “개방 정의감”이었다.
1년 만에 상황이 뒤집혔다. 알리바바의 최신 모델 Qwen 3.6 Plus는 비공개로 전환해 자사 제품에서만 쓸 수 있게 됐고, 지푸의 GLM5.1은 중국 내 1위를 달리며 문을 닫은 모델의 저력을 증명하고 있다. MiniMax 2.7은 ‘오픈소스’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사업에 쓰려면 별도 허가가 필요하다. 리눅스라는 무료 운영체제 위에 기업용 유료 서비스를 얹어 수십억 달러 기업이 된 Red Hat과 같은 공식이다. 패턴은 명확하다. 최고 성능 모델은 닫히고, 작은 모델만 제한적으로 풀린다.
이 전환을 미중 기술 냉전의 프레임으로만 읽으면 본질을 놓친다. 냉전은 촉매일 뿐, 핵심은 AI 모델이 드디어 진짜 돈이 되는 상품이 됐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것을 밀어붙이는 세 겹의 힘이 있다. 비용, 증류, 지정학.
첫 번째 압력은 비용이다. 전 세계에서 AI가 하루에 처리하는 텍스트 양은 2024년 초 약 1.2조 단어에서 2026년 3월 1,400조 단어로, 1,000배 넘게 폭증했다. 이 규모 앞에서 무료 제공은 자선이 아니라 자살이다.
투자업계에는 “AI 서비스는 한 명을 더 태워도 추가 비용이 거의 안 드는 구조로 간다”는 서사가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작은 AI 모델은 이제 스마트폰에서도 돌아간다. 그런데 요즘 주목받는 AI 서비스들, 여러 단계를 거쳐 스스로 생각하고, 외부 도구를 호출하고, 실시간으로 검색까지 결합하는 이른바 ‘에이전트형 AI’는 여전히 대형 서버 수십에서 수백 대의 연산을 소모한다. 폭증의 본체는 스마트폰 위의 작은 AI가 아니라, 클라우드 서버에서 복잡한 추론을 돌리는 대형 AI다. 2024년에는 GPU, 그러니까 AI 연산 전용 칩의 품귀가 병목이었다면, 지금의 병목은 칩 위의 서비스 레이어로 올라왔다.
인터넷 초기에 “정보는 자유다”라는 말이 있었다. 뉴스는 무료였고, 블로그가 언론을 대체할 거라 했다. 뉴스룸이 하나둘 사라지자 살아남은 곳들은 유료 구독 장벽을 세웠다.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워싱턴포스트. 좋은 콘텐츠가 돈이 된다는 게 증명되자 “자유”는 끝났다. 지금 AI 오픈소스에서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같은 궤적이다. “개방 정의감”은 모델이 아직 돈이 안 될 때의 사치였다.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순간, 개방의 명분은 증발한다.
두 번째 압력인 증류는 큰 AI 모델의 답변을 대량으로 수집해서 작은 모델에게 먹이는 학습법이다. 명품 셰프의 레시피를 맛만 보고 재현하는 것과 비슷하다. 올해 2월 Anthropic은 공식 보고서에서 DeepSeek, Moonshot, MiniMax 세 곳을 지목하며, 2만 4천 개의 가짜 계정으로 1,600만 번 질문을 퍼간 것을 “산업 규모의 증류 공격”이라 불렀다. 4월 초에는 OpenAI, Anthropic, Google이 함께 만든 ’FMF(Frontier Model Forum)’를 통해 중국 기업의 증류에 대한 정보 공유 체계를 가동했다. 표면적으로는 지식재산권 보호다.
일론 머스크가 정곡을 찔렀다. “Anthropic이 인간 프로그래머들한테서 가져간 걸, 중국이 다시 가져갔다고 분노하는 건 무슨 꼴이냐?” 미국 AI 기업들이 GitHub의 코드, Stack Overflow의 답변, 수억 명이 쓴 글로 모델을 훈련시킨 것 자체가 넓은 의미의 증류다. 그걸 다시 중국이 증류한 건 베낀 걸 다시 베낀 격이며, 도덕적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쪽은 어디에도 없다.
세 번째 압력은 지정학이다. FMF의 본질은 누가 이 기술을 쓸 수 있고 누가 못 쓰는지를 정하는 국제 카르텔 형성이다. 증류의 도덕성 시비는 부차적이다. 핵심은 그 규칙의 틀이며, 2026년에서 2027년 사이에 제도화될 가능성이 높다.
세 압력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 글로벌 AI 생태계는 “최고 성능 모델은 유료 API로 잠그고, 작은 모델만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이중 구조로 굳어진다. AWS, Azure, GCP가 클라우드 시장을 3등분한 것처럼, AI 서비스 시장도 소수 대형 플레이어의 과점으로 굳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폐쇄가 곧 종점이 아님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Oracle이 인수한 MySQL 데이터베이스를 방치하자 MariaDB라는 대안이 성장했고, Redis가 사용 조건을 바꾸자 Valkey라는 복제판이 생겨났다. Meta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자사 AI 모델 Llama를 계속 무료 공개하며 경쟁사들의 유료 프리미엄을 깎아내리고 있다. 1위 기업들이 닫는 순간, 2-3위 기업은 더 공격적으로 무료 공개에 올인할 것이다.
증류 공격의 주범인 DeepSeek은 이 환경에서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베끼는 것으로 시작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AI를 훈련하는 역량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증류는 단순 복사가 아니다. 대형 모델의 답변을 재구성하고 효율화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정제하는 파이프라인, 학습 순서를 설계하는 노하우, 성능을 평가하는 체계가 내재화된다. 한때 레시피를 베끼던 요리사가, 자기 입맛을 가진 셰프가 되는 과정이다. 게다가 이미 공개된 모델들은 회수할 수도 없다. DeepSeek V3, Qwen 3.5, 구글이 자유 라이선스로 풀어버린 Gemma 4는 수십만 서버에 복제됐다. 문을 닫는 건 향후 모델에만 유효하다.
이 구도가 각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선명하다.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포지션은 Qwen이나 DeepSeek의 공개 모델을 가져다 자기 서비스를 만들던 스타트업들이다. 원본 모델의 업데이트가 끊기는 순간, 시간은 적으로 변한다. 경쟁자는 최신 모델로 갈아타는데, 원본에 종속된 서비스는 구버전에 갇힌다.
살아남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자체 데이터라는 방어벽을 쌓아 특정 영역에서 독자적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모델과 중국 모델을 상황에 따라 골라 쓰는 ‘멀티 모델 중개’ 인프라, 즉 여러 AI 모델 사이에서 최적의 경로를 잡아주는 교통 정리 역할을 장악하는 것이다. 미중 기술 분단이 심화될수록, 양쪽을 이어주는 이 중개자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간다.
동남아의 상황은 더 극적이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스타트업들은 이미 중국산 소형 AI 위에서 서비스를 구축했고, 동남아 전체가 사실상 중국 AI 기술권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의 지정학이 물리적 국경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력권을 만든다.
미국과 중국 모두 최고 성능 모델을 닫고,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위성 생태계가 갈라지는 구도가 선명해질 것이다. 전쟁터는 완성된 AI 모델 자체가 아니라, 학습에 쓰이는 데이터와 훈련 과정의 통제권으로 이동한다.
상상해 보자. 2028년, 기업이 의료 영상 판독에서 압도적 성능을 내는 AI를 내놓는다. 경쟁사가 따라 만들려 하지만 벽에 부딪힌다. 모델의 설계도는 논문에 나와 있고 컴퓨터 성능도 충분한데, 수백만 장의 전문의 진단 데이터와 그것을 학습시키는 노하우가 없다. 반도체 설계도를 손에 쥐고도 핵심 제조 장비 없이는 칩을 찍지 못하는 것과 같다. AI 모델 자체가 아니라 훈련 과정 전체가 비밀이 되는 세계다.
모델은 복제되고, 알고리즘은 논문으로 퍼진다. 하지만 원료인 데이터마저 잠기는 세계에서, 모델이 닫힐수록 AI를 실제로 돌리는 인프라는 역설적으로 더 열린 경쟁이 된다. 아무리 좋은 모델을 가졌어도, 결국 누군가의 서버 위에서 돌아가야 한다. 최고의 모델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델이든 가장 싸고 빠르게 흘려보내는 경로를 가진 쪽이 다음 판의 지배자가 된다.
여러 모델 사이에서 최적의 경로를 잡아주는 중개 인프라, 그 교통 정리 레이어가 이 경로다. 데이터와 훈련이라는 원료를 둘러싼 전쟁 아래에서, 누가 조용히 파이프를 깔고 있을까.


